엄마와 나

엄마의 쌍커풀 수술
그 후부터 사람들을 우리를 '별로 닮지 않은 모녀'라고들 이야기 했다.
그 전에는 붕어빵이라면서.

이상한 것은 왠지 모를 서운함이 들었다는 것.
마치 엄마에게 '이 배신자'라고 말해도 될 것 같은 느낌.
'흥!'

비어있는 외할머니의 그래프와 나는 계모야라고 말하곤 하는 엄마
엄마는 스스로를 계모라고 자청하곤 한다.
엄마가 밥 한 번 청소 한 번 안 해주는 것에 익숙한 나여서
내가 엄마에게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건만
엄마가 스스로를 '계모'라고 자신있게 칭하는 것은
"너는 엄마가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거니까. 있어주는 이 엄마는 계모지만 너에게 참 잘 하고 있는거야."
즉, '있다는 것만으로 엄마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생각이 숨어있다.

'참 우리 엄마지만 알 수 없는 엄마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엄마의 어머니 즉 나의 외할머니는 엄마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래서 외할머니의 그래프는 비어있다. (어떻게든 채워보려 했지만 엄마의 유일한 형제인 오빠도 너무 어렸을 때라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하신다.)
몇 년 후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이 때 부터 '울퉁불퉁 구불구불한 엄마의 인생'이란 드라마가 시작된 것을 말 할 것도 없겠다.

그래서 엄마에게 있어 '부모'라는 존재는 '있는 것 만으로도 부러운 존재' 또는 '원망스런 존재'로 요약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기억하는 외할머니의 모습은 '차갑고 매일 아프기만 한' 모습.

내가 힘들다고 불평이라도 하면 엄마는 여지없이,
"너는 엄마라도 있지.. 엄마는 그 흔한 엄마도 없었어!! 어디서 불평이야!"
라는 반응을 해오곤 한다.

'딸한테 저런 어이없는 반응은 뭐지' 라는 생각을 했지만,
생각해 보니 꼭 어이가 없지만은 아닌 것 같다.

이걸로 엄마에 대한 한가지 오해가 풀리고 한 발짝 다가간 느낌.

"엄마, 우리 서로에게 엄마가 되어주자."

기억나지 않는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린시절

엄마와 나의 그래프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어린 시절의 행복도가 바닥을 긴 다는 것.
둘 다 어린 시절의 일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리고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

나의 기억이 고통스러운 것들로 가득 차서 행복했던 기억들이 모두 밀려난 것인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모두 어두운 것들 뿐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엄마와 아빠의 싸움. 찢어지는 비명소리.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 욕설. 술.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의 모습. 방 안에 어린 동생과 웅크리고 있는 나의 모습. 이혼. 엄마의 가출. 4번의 전학. 새엄마. 아빠와 나의 싸움. 매 맞음.
이런 키워드들로 대략 정리할 수 있겠다.

엄마 역시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잃고서 친척집을 전전하며 구박도 받으며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힘들게 살았던 생각에 '어린시절'은 곧 '인생의 암흑기'라고 이야기 하곤 한다.

재미있는 사실이지만, 가끔 우리는 서로의 불우했던 어린시절을 비교하며 '너는 나보다 행복한 거야.'라던가 '나는 이런 것도 겪었는데 넌 왜 이리도 나약하니.'라는 경쟁 아닌 경쟁을 하곤 한다.

"팔이 잘려 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어~"
마치 팔이 잘린 사람이 손가락이 잘린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것처럼.
손가락 잘린 사람의 아픔 역시 큰 아픔일텐데도..

이런 안타까운 현상 때문에 어떻게 보면 서로의 아픔을 더 보듬어 줄 수 있는 두 사람인데도 서로 많이 어긋나곤 한다.
"좀 더 강해져라."고 이야기 하는 엄마와 "내가 힘들 때 좀 토닥여주고 보듬어 주면 안돼?"라고 이야기 하는 나.

그러다 보니 서로 진실된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강 같이 많은 나의 고민 이야기와 엄마의 고민스러운 이야기가 함께 모여서 바다를 이룰 날은 언제 올까?

이거야 말로 운하를 건설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
엄마의 그래프에서 나와 대조적인 것이 '이혼 후'이다.
어머니에게는 친권이 인정되지 않았던 변태적인 한국의 법 때문에, 나는 나의 의사와 전혀 상관 없이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리고 내 인생의 본격적인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알콜중독 + 편집증 환자인 아버지는 내 인생 최악의 인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다.
나는 아버지를 경멸했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못마땅해 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폭력과 언쟁.

나 역시 심리학적으로 이상행동들을 많이 보여 자기 비하, 자살충동, 우울증, 자해증상까지.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던 어둡고 어두운 시기였다.

한편,
엄마는 엄마 삶에 있어서 꽤 괜찮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재혼했다. 엄마의 새로운 삶이 하루하루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던 약 10년의 시간을 우리는 서로 다른 우주에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3년 내가 고3일 때, 가출 후 우여곡절 끝에 이뤄낸 엄마와의 재회.

때문에 엄마와 나는 약 10년 간의 공백기 동안의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한다.
서로 별로 알고자 하는 노력도 없었던 것 같다. 단편적인 궁금증과 단편적인 대답들 뿐이었다.
어쩌면 거기에는 별로 알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나는 알 수 없는 배신감이나 원망을 마음 속에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프를 바라보며 새삼 떠오르는 일종의 배신감이 이러한 느낌의 근거가 되어주고 있다.
아직 두려운 마음이 앞서긴 하나, 이러한 감정들을 이야기 하지 않고서는 서로를 이해한다고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면 엄마와 한 발자국 더 나아가려는 노력이 후퇴할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장난스럽게라도 이야기 해 봐야겠.
"나 없을 때 혼자 그렇게 좋았어??"
(아니라고 해줘!!)

그리고 지금
2004년 나의 가출과 엄마와의 재회 성공으로 우리의 삶은 다시 한 시간과 공간에 놓여진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직도 별로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너무 바빴다.
특히 나는 이전의 어두웠던 삶은 버리고, 새로운 내가 되기 위해 발버둥쳤다.
진짜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 걸음걸이 부터 다시 시작하고 배웠기 때문에, 마치 가시나무 새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이제서야 이야기하려고 시도해 보지만, 꽤 늦어버린 것 같다는 마음에 초조한 느낌 마저 든다.

그래도 나와 50%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엄마를 이해하는 것이 나를 아는 것에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에, 엄마와 나 사이에 알게모르게 쳐 두었던 수 많은 벽들을 걷어내고 알지 못했던 나의 반쪽을 진지하게 들여다 보는 작업이 꼭 필요할 것 같다. 그 동안 두렵다는 이유로 나는 어리광을 피우고 있었던 것을 아닐까라는 자책감 마저 고개를 드는 지금.

서로를 위한 '답'을 제시해 줄 수는 없겠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으로 그 동안 2% 부족했던 무언가를 채워주는 것 만으로도 엄마와 나의 관계는, 나와 나 자신의 관계는 좀 더 나아질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by thespirit | 2008/09/17 00:41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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