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에서 잰 영혼의 무게’ [3. 마추픽추 – take one: 쿠스코(Cusco, 마추픽추로의 관문도시)]

언젠가 어렸을 때, 아직 나의 영혼이 파릇파릇 싱싱했을 무렵 TV에서 마추픽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있다.

“멋져!! 꼭 갈 테다!”

아직도 그 다큐멘터리의 장면들과 나의 각오가 비디오테잎 돌아가듯 조금은 지직 거리지만 꽤 좋은 화질로 뇌의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걸 보면 나는 정말 마추픽추에 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 정했어. 다음 여행지는 쿠스코야!’
“라껠 아주머니, 여기(아야쿠쵸)에서 쿠스코(마추픽추로의 관문 도시)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얼마 안 걸린단다.” 

.
.
.

라는 상큼한 대답에 시원스럽게도 일말의 걱정 따위 없이 우린 아주머니가 소개해 주신 버스를 탔던 거다. 그랬던 거다..

죽음의 버스 체험기

얼마 후..

우리는 두 명의 외부인으로서 우리가 없었더라면 순도 100%의 현지인으로 가득했을 버스에서, 목구녕까지 차오른 토끼와 그리고 추위와 싸우며,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등받이와 엉덩이 받침이 양심도 없이 분리되어 버리는 의자를 붙들고,

“살려줘어어ㅓㅓㅓ~~~”
라고 하염없이 밤하늘의 별들에게 울부짖고만 있었다.

‘얼마 안 걸린다.’라는 아주머니의 말이 ‘26시간’을 의미하는 것일 줄이야..
‘편안한 코스다.’라는 아주머니의 말이 ‘360도 초필살벵글벵글우웩코스의 20시간이 지속되는 코스’를 의미하는 것일 줄이야..

“말도 안돼. 이럴 수는 없어~~!!”라고 울부짖어 보아도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나마 필자는 강인한 밥통님의 덕분으로 이미 삼켜진 음식녀석들이 식도를 거슬러 올라와 반란을 꾀하는 일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친구 미역이는 힘이 되어주지는 못할망정 반란을 일으킨 음식 녀석들의 소동으로 인해 이젠 1/20 밖에 남아있지 않는 영혼의 한 자락을 살포시 붙들고서 창 밖의 누군가에게 왠지 중얼거리고만 있었다.

“중얼중얼… 살려줘… 어어.. 살.. 려어.. 줘어… 중얼중얼….”

누군가로부터 순도 100%의 생존본능이란 녀석의 절규를 들은 건
이 때가 처음이었으리.
약간의 충격 + ‘흠 새로운 느낌이군.’이라는 감상과 함께 곧

느무느무나도 미안한 마음에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달라고 꼬신 입장이라..)
말이라도 걸어보고
버스에 타기 전 잔뜩 산 과자들(웨하스류)를 내밀어 보기도 하고 하였으나
결국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받아들여지지 못한 웨하스를 혼자 우적우적 다 먹어 치우면서 나는 그때 정말로
미역이가 죽어버리는 줄로만 알았다. 흙흙(눈물)


<26시간 내내 미역이를 괴롭혔던 죽음의 그림자의 흔적(이 사진을 보면 마음이 숭고해진다고나 할까..)>

여튼 이런 웃지 못할 우여곡절 끝에! 저녁 9시쯤 마추픽추로의 관문 도시 쿠스코에 도착했다!! 이 감격이란..
도착하자마자 호스텔을 찾아 수많은 삐끼님들을 밀쳐내며 남은 기력을 짜내어 제일 싸보이는 곳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호스텔

<친절했던 주인 노나아주머니>


<노나아주머니의 식물녀석들>


<정확히 아침 10시쯤 되면 눈 바로 위로 햇빛이 꽂혀내리도록 설계된 천장의 창문들>


<호스텔 전경, 이렇게 가운데가 뚫려있고, 방들이 사각형으로 둘러져있는 모양이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전형적 건축물이라고..>

정말 말그대로 ‘페루의 동양인 거지’ 같았던 우리들을 따듯하게 맞아주신 아주머니는 코카인의 재료가 된다는 따듯한 코카잎 차(Coca tea)와 설탕듬뿍을 주셨다. 딱 세글자로 캐감동.
페루에서는 물처럼 마시는 코카차. Coca라는 녀석은 페루 어디에나 널려있는 녀석인데, 고산병을 예방하고 피로에 지친 몸을 말끔하게 씻어준다고 한다. (몇몇.. 음 아니 사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어떻게 가공해서 코카인이라고 하는 괴물약물을 만들어 내곤 하는 것도 사실이다. 비밀(?)인데, 굳이 어렵게 코카인을 만들지 않아도 담배 피듯이 어떻게 잘 이 녀석을 피우면 뿅- 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어떤 현지인이 이야기 해 주었다.)

정말 마법처럼 영혼이 다 빠져나가서 덜렁덜렁 겨우 살아있던 우리는 이 녀석으로 만든 차 한 모금에 “살았다!! 살았다고!!”라는 안도 + 기쁨의 감정에 덩실덩실 흥겨워할 수 있었다.


<요녀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Coca 이파리. 이런 작은 이파리따위가 인간을 농락하다니.. 멋진녀석>
생존 본능을 회복한 우리는 곧 ‘에너지를 채워야겠군.’ 이라고 생각했고, 무작정 ‘쌀’을 찾아 길을 나섰다.
“아로스(Arroz)! 아로스!!”
말 그대로 “쌀!! 쌀 어딨니 쌀!!” 이라고 외치면서 거리를 거칠게 헤매었고, 어떤 삐끼님이 우리의 부르짖음에 반응하시고는 “아로스 여기따!”라고 응답해 주심으로서 우리는 정말 페루의 “쌀”만을 우적우적 미네랄 채우듯이 마구 삼켜댔다.
비로소 멈춰있던 뇌활동이 재개되며,
잠들어있던 나의 Ego가 활동을 재개,
‘마추픽추로의 여행을 시작해야지!’ 라는 각오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근데.. 일단 좀 자고. 쿨 zzz

by thespirit | 2008/08/25 03:30 | 페루페루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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