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에서 잰 영혼의 무게’ [ 2. 산골 마을 아야쿠쵸에서 만난 사람들]


고통과 인내의 버스타기


고교시절의 친구 박진영(지녕)의 “페루가자”란 말에 “그럴까” 하고 넘어가 페루에 도착한지도 하루가 지났다. 우리는 이제 페루의 수도 리마를 떠나 라껠 아주머니와 막스 아저씨가 운영하는 유치원이 있는, 아야쿠쵸로 향하는 여정에 있다. 이를 위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야쿠쵸로 향하는 9시간의 버스 이동이었다. 페루는 도시 간의 이동수단으로 버스가 잘 발달해 있다. 어느 도시에 머물건, 다음 여정을 위해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버스에 몸을 싣게 된다. 그리고 그들 중 평소에 체력을 단련해 두지 않았거나 선천적으로 용가리 통뼈 같은 내구성을 자랑하지 못하거나 어린 시절 멀미병력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나처럼 고산병과 구토와 멀미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나는 9시간 동안 약 3-4차례의 구토를 겪으며 ‘날 죽여라’라고 마음속의 누군가에게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도 리마 근처의 곱게 깔려있었던 아스팔트 바닥은 어느새 비포장 도로로 둔갑하였고, 울퉁 불퉁한 돌부리들로 쉼 없이 덜컹거리는 버스는 나를 한층 향상된 고통으로 내몰았다. 끝이 없을 것 같던 고통의 시간도 언젠가 끝이 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을 안다고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며 결국 아야쿠쵸에 도착했다. 아야쿠쵸에 도착한 장면은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마 익숙하지 않은 장시간 버스 이동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몸은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다는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잠시 안정을 찾은 반고리관의 평형을 유지하느라 에너지를 다 썼나 보다.

정글 소년 리키, 열정의 리사이틀

<정글 소년 리키>

우리는 아야쿠쵸의 버스 역에서 택시를 타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라껠 아주머니와 막스 아저씨는 우리가 잘 곳을 정리해준 뒤, 같이 사는 소년, 리키를 소개해 주었다. 리키는 아주머니 아저씨와 함께 살기 전에는 페루 어딘가의 정글에서 자기 부족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었던 정글 소년이었는데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어 아주머니 집에서 살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아주머니의 통역으로 우리는 서로 소개를 하고, 가수가 꿈인 리키의 노래를 유치원 교실에서 듣기로 했다. 라껠 아주머니와 막스 아저씨의 흥겨운 가무와 탬버린 연주로 시작하여 리키의 노래와 전자 피아노 연주로 장시간 지속된 무대는 늦은 밤까지 끝날 줄을 몰랐다. 나와 지녕은 페루비안 정글 송의 무한 반복되는 리듬과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참신한 멜로디에 자기도 모르는 새 초대되어 정신이 들뜨고 종국에는 혼미해 지고 있었다. 나는 이 밤중 소란에 동네 주민에게 항의가 들어오지 않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라는 생각과 함께 언젠가 리키가 페루의 국민적인 가수가 되어 라디오에서 리키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장면을 상상하였다. 다듬어지지 않은 솜씨로 열정을 연주하는 까만 피부의 꿈 많은 소년을 나는 어느새 응원하고 있었다. 이 후에는 리키의 부족장님과 부족장님의 많은 처들 및 그냥 부족 사람들이 나와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홈 비디오 같지만 사실은 뮤직 비디오인 동영상을 약 한 시간 정도 감상하기도 했다. 부족장님이 사방을 뛰어다니며 노래하는 강렬한 그 영상은 잠을 청하기 위해 감은 눈꺼풀 뒤에서도 오래도록 사라질 줄 몰랐다.

유치원 아이들과의 첫 만남


<너희의 웃음 앞에 우리는 숙연해졌었지..>

나는 아직 머리가 굵지 않은 유치원생 정도되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빤히 쳐다봐도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거나 눈이 마주쳐도 의식하지 않거나 아무 적개심도 가지지 않는 아이들. 자신을 쳐다보는 타인 때문에 눈동자에 담은 순수를 일그러뜨리지 않는 어린 아이들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젯밤 리키의 무대는 유치원 아이들의 교실로 다시 원상복귀 되었고,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교실 가득 앉아 있었다. 그 아이들이 웃고 까불고 하품하고 노래하는 모습은 거리낌 없었고 그 때문에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은 어딘가 다르게 생긴 이방인이 어느 날 갑자기 수업에 들어와 앉아 “몇 살이니?”와 같은 쓸데없는 말을 서툴게 묻고 사진을 찍어대니 처음에는 경계하다가, 사진기가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신기하기도 해선지 금새 호기심 어린, 수줍고도 친근한 얼굴로 다가와 장난을 친다. 그러다 선생님 엄한 말씀에 다시 집중해 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엉덩이가 들썩이고 자기도 모르게 몸이 배배 꼬아진다. 공작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다시 즐거워한다. 내일이 ‘어머니의 날’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줄 작은 선물로 문에 걸어놓을 수 있는 장식물을 만들고 있다. 서툰 솜씨이지만 우리어머니들은 창조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창조물이 만든 창조물이란 사실 만으로도 감탄 하겠지.

아야쿠쵸 학교 탐방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고마워!!>

유치원에서의 수업을 그렇게 마치고 교실을 정리한 뒤, 우리는 리키의 고등학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담임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리키가 반장을 하고 있다는 반에 들어가 라껠 아주머니의 통역으로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이름이 무엇인지, 여행하면서 페루에 대해 느끼게 된 점이 무엇인지 등을 이야기 하고 아이들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 받기로 했다. 아이들의 적극적인 질문에 우리는 현재 다니는 학교, 등록금 문제, 한국의 계절, 가장 큰 사회 문제, 한국의 놀이문화, 디스코텍 유무, 결혼에 대한 생각과 적령기 등 실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강렬하고 똘망한 눈망울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어른스러움을 가진 아이들은 진지하고도 밝은 태도로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페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짧은 만남은 아쉽게 끝나고, 나는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잘 찾고 그것을 하면서 즐겁게 살아가길 바래 하고 말해 주었다. 그건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 나라에서건, 인생에서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걸 모르는 바 아니다. 꿈은 반드시 명백한 목적을 위해 품는 것만은 아니니까 바램을 담아 꿈을 이야기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생기 넘치는 아이들과 왁자한 분위기. 생김새는 달라도 한국과 다름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우리는 아주머니, 리키와 함께 아야쿠쵸 시내구경에 나섰다.

가슴 아픈 어머니의 날

<자꾸 그렇게 웃으면.. 누나가 납치해간다!!>


<훨훨 날아라~~>

다음날, ‘어머니의 날’을 맞이하여 라껠 아주머니와 막스 아저씨, 유치원 선생님들은 작은 파티를 준비했다. 아이들의 어머니를 유치원에 초대하였고, 선생님 중 한 분은 피에로로 분장하여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모두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고, 어머니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작은 놀이들을 하며 흥겨운 분위기를 즐겼다. 한국에서 온 생뚱 맞은 우리들에게도 어머니들은 온화했다. 어머니는 모든 아이들의 어머니라더니, 그 말이 맞는 가 보다. 아이들이 전날 어머니를 위해 만든 작은 선물을 증정하는 시간을 보낸 후 유치원에서 준비한 케익을 다 함께 먹었다. 아이들의 표정은 어머니가 있어선지 전날보다도 더욱 활기 차고 사랑스러웠다. 신뢰와 애정의 대상이 자신을 위해 이 자리에 있어주는 것 만으로도 들뜨는 아이들. 그러나 아이들 중에는 어머니가 오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7살인 케빈은 어머니가 마약 때문에 감옥에 있어 형과 함께 사는데, 형도 어머니도 오지 못했다. 그래도 케빈은 잘 관리해줄 사람이 없어선지 썩어버린 유치를 드러내면서 잘도 웃는다. 라껠 아주머니가 감옥에 있는 엄마가 미우냐고 물어도 아니란다. 그 표정에서 시무룩한 기색을 읽었다. 미워도 밉다고 할 수 없는 걸까. 케빈이 만든 어머니를 위한 선물은 줄 사람 없어 케빈의 손에 들려있다. 파티를 마치고 쓰레기를 정돈하니 몇 몇의 어머니들과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들, 그리고 케빈과 같이 어머니가 오지 않은 아이들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아이들과 짧은 시간 동안 간지럼놀이 잡기 놀이 손잡아 공중회전 놀이 등 아이들이 까르르 혹은 히히힉 하고 한껏 웃을 수 있는 놀이를 했다. 아이들이 하나 둘 어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고, 케빈도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케빈을 꼬옥 안아주고, 우리는 작별을 했다. 서툰 스페인어로 “난 네가 무척 좋아”라고 말해주었다. 케빈은 우리가 가버리냐고 묻는 것 같다. 표정이 어둡다. “다시 보자”라고 기약 없는 말을 하며 다시 한 번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케빈의 어머니가 될 수 없는 것에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든다. 어머니는 어린이의 권리인데, 그 권리를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케빈의 유치를 잘 닦아주고, 닦는 법을 친절히 알려주고, 잘 관리해줄 누군가가 케빈에게 있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케빈이 튼튼하고 새하얀 새 앞니를 내보이며 활짝 웃을 수 있도록. 케빈! 행복하길 바래.

따뜻했던 마음들을 뒤로하고

<지구 반대편에서 온 외계인 같던 우리를 보낼 때 눈물까지 보이신 막스 아저씨.. 보고시포요ㅠ>

아야쿠쵸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 그 동안 정든 라껠 아주머니, 막스 아저씨, 리키, 유치원에 다니는 귀여운 꼬마들과 케빈,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과 유치원에서 키우던 정신 없는 장난꾸러기 개 까지도 그리워 질 것임을 예감했다. 아주머니 집에서 머무는 동안 우리는 주식으로 빵과 계란에 유칼립투스 꿀을 발라 먹었는데, 이 꿀은 막스 아저씨가 직접 채취하신, 귀한 거라고 한다. 어찌나 달콤하고 맛 좋은지 우리는 식사시간 만 되면 끊임 없이 빵에 꿀을 발라 먹었다. 귀한 음식이 덕분에 쑥쑥 줄어들었지만, 항상 우리가 좋아하던 꿀을 식사자리에 놓아두었던 두 분의 따뜻함에, 초보 여행객인 내 마음은 항상 포근했다. 우리는 아주머니, 아저씨, 리키에게 편지를 남기고, 페루여행의 격전지, 여행자의 도시, 마추픽추로 향하는 관문, 쿠스코로 떠날 준비를 했다. 리키와 작별 인사한 후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따라 아야쿠쵸의 버스 역에 도착했다. 버스에 오른 우리는 창 밖에서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모습을 보았다. 아저씨가 무언가 생각난 듯 버스에 올라 뒤에 앉은 커플에게 우리를 목적지까지 잘 부탁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다시 작별인사를 했다. 아주머니의 얼굴이 안 보이는 것 같다.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인사하고, 나도 지녕도 손 흔들며 인사한다. 눈물이 흔들흔들, 손이 흔들흔들, 아저씨가 웃고 있고, 아주머니가 울고 있는 것 같다. 버스가 기어이 떠나고 만다.

여행을 하던, 생활을 하던, 우리는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정든 사람들을 떠나면서, 내 마음 한쪽을 두고 온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마음 한쪽이 아련할 리가 없다. 어떤 헤어짐은 새로운 만남으로 채워지지 못한다. 새로운 만남은 마음에 새로운 자리를 만들 뿐, 정든 얼굴이 있던 곳에 두고 온 마음은 언제나 그곳에 있고, 마음 한 조각 빈자리는 자랑스럽기라도 한 듯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여행은 계속된다. 마음에 늘어가는 훈장을 소중히 간직한 채.

<스무살 누나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 루이스ㅠ 어린녀석이 기럭지부터 눈빛까지 아주 왕자님이야. 싸랑해~~>

by thespirit | 2008/08/25 03:19 | 페루페루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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