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25일
‘페루에서 잰 영혼의 무게’ [1. 안녕, 페루]

<페루의 하늘과 작렬하는 브이>
[1. 안녕, 페루]
새벽 4시의 리마는 어두웠다.
미국 채플힐-워싱턴디씨-마이애미를 거쳐 새벽 4시에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했다.
남미에 오려고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선택했다 라고 해도 수긍할 수 밖에 없는 나. 친구 ‘미역’이를 꼬셔서 드디어 페루에 도착하다!
친구가 소개시켜준, 페루에서 선교사로 계시는 두 커플을(라껠 아주머니와 남편마크아저씨) 공항에서 만났다. 새벽 4시인데도 미리 나와서 기다려주시다가 우리를 보시고는 너무 기뻐하시는 모습에 한 마디로 감동과 감사가 무럭무럭.
스페인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는 나와 내 친구를 인도하시는 아주머니 아저씨를 따라서 택시를 타고 바로 호스텔로 직행했다. 택시 안에서 본 새벽 4시의 리마는 어두웠다. 거리엔 몇몇 (왜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건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약간 안전하진 않은 느낌이랄까.
살짝 차가운 듯하고 습한 공기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면서 한국도 아니고 채플힐도 아닌 페루의 수도 리마에 와있구나 라는 느낌이 다가왔다.
‘앞으로 한 달 간 나를 채워줄 공기와 인사해.’
여행의 시작이다!


이곳은 안전하지 못한 곳이라고 엄청나게 강조하시는 아주머니의 말에 ‘먼가 경계해야겠군.’ 이라는 마음을 먹었고, 아주머니는 카메라도 못 꺼내게 하셨다.
“나는 관광객이오!! 나를 노리시오! 라고 하는 거랑 같은 거라고!”
아주머니가 앞에서 이끌고 아저씨가 뒤에서 따라와주면서 그야말로 철벽경계를 펼치며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간 곳은 compassion이라는 NGO.

<마크아저씨, 친구미역이, 라껠아주머니와 compassion에서>
페루에는 가정폭력문제가 참 심각하다고 한다. 이 곳은 폭력에 견디다 못해 집을 떠나온 어머니와 아이가 모여서 사는 곳이다.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했다. 재정적인 문제나 기타 여러 문제들.. 아주머니도 함께 동참해서 일하시는 듯 했다.
그곳의 아이들과 이야기 몇 마디 해보려 했으나 금새 좌절.. 스페인어 좀 공부하고 갈 걸. 기껏해야 '얼마에요?' 밖에 못하는 나의 비루한 스페인어.


<‘그래도 아이들은 사막의 한 구석 같은 메마른 곳에서도 미소 짓고 있었어.’>
‘모든 길은 플라자 데 아르마스로 통한다!’
페루는 거의 모든 도시들이 '중앙광장'을 가지고 있다 (네모난 광장이 가운데에 있고 4면을 둘러싸고 건물들이 늘어져 있는 모양). 그리고 그곳에는 항상 많은 상점들과 호스텔 식당들이 즐비해있다. 참 편한 구조라는 생각이.
이것저것 둘러본 결과, 이곳 사람들은 아시아인을 별로 볼 기회가 없었는지 관광국가임에도 사람들이 뚫어져라 쳐다본다는 것.
"넌 어느별에서 온 외계인이냣?" 이라고 가득 이야기하는 눈빛으로 그야말로 뚫어져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물가 체크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물가 체크결과. 밥은 상당히 저렴한 듯. 대략 2000-3000원 정도면 괜찮게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옷이나 신발 등의 물건은 미국과 비슷할 정도로 상당히 비쌌다. 페루는 자체 산업이 잘 발달해 있지 않다고 들었는데 역시나..
어딜 가나 코카콜라 네슬레 등의 먹을 거리와, 도요타, 대우, 현대, 엘지 등 페루에 있을 것 같지않으나 버젓이 있는 외국 제품들이 페루를 지배하고 있었다.
먼가 슬픈 기분이 들었다. 식민지 시대 이후로 계속 끊이지 않는 가난의 사슬에 매여있는 건 아닐까?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더니, 페루에는 자체 산업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대학을 나온다 해도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예를 들어 간호학과를 나와서 관광객을 위한 레스토랑을 운영하게 되어버린다던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실제로.. 한 집 건너 한 집이 슈퍼마켓이고 호스텔이고 빨래방이고 PC방이었다. 생산 따위.. 하지 않고 있는 거냐?? ‘음.. 여기다 회사 하나 세워??’
머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들 잔뜩 하다가,
내일은 '아야꾸초'라고 아주머니 아저씨가 오신, 관광객이라면 위험해서 한번쯤도 가지 않을 그런 매우 Local한 안데스 산맥 속 케츄아 인디언들(네이티브 페루인을 부르는말)의 도시에 가기로 하고서 버스티켓을 샀다. 버스 시간은 자그마치 9시간!
마크아저씨 여동생
그리고 나서 향한 곳은 아저씨네 여동생 집.
도대체 이런 길을 어떻게 기억하시는 걸까? 라고 같은 곳을 계속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해 할 정도로 복잡한 길을 따라 이리저리 사사삭 다닌 끝에 다다른 곳.
너무나도 따스한 환영에 마음껏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저어기 지구 반대편에서 온 두 한국인 나부랭이들이 뭐가 그리 예쁘다고 이리 환영을 해주시는 건지.. 라고 생각할 정도로..
귀하다는, 밥과 콩으로 요리한 그 무엇과, 고기인듯한 그 무엇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
라껠아주머니의 통역으로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언제든지 너희의 집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와주렴" 이라고 해주시는 아주머니의 따스한 말씀과 페루표 찐한 포옹을 크나큰 선물로 받아버렸다.
‘와서 받기만 하는 게 벌써..’
여행자의 마음
그 무슨 이성으로 생각해 봐도 전혀 관계없는 뚱딴지 같은 사람들이 어쩌다 만나게 되고 인연을 만들어서 영원히 서로의 기억의 일부로서 남게 되는 잔잔함. 지금 내 곁에 있는 낯선 누군가의 온기조차 괜시리 소중하게 만드는 그 느낌. 소중한 추억의 한 조각 조각을 발굴해 가는 보물 찾기 중의 느낌.
훗날 언젠가 미역이와 함께 즐거이 떠들겠지.
“맞아, 그 때 페루에서 이런 아이들이 있었어. 어쩌구 저쩌구~”
여행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순간이었다.
친구 미역이와 밤새 그 동안 쉽게 나누지 못했던 깊은 이야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며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을 기약하며.
# by | 2008/08/25 03:04 | 페루페루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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